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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쌍둥이/쵸로오소 2020. 4. 25. 01:14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이 수백 개의 움직이는 검은 다리였을 때, 내가 목만 잠기지만 않았더라도 4옥타브의 고음까지는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난 그만큼 놀랐다. 그에 반해 너는 두 눈을 한 번 더 깜빡이고는, 얼굴을 조금 뒤로 빼고 해사하게 웃었다. "일어났어?" 조금 비틀거리는 테가 역력한 얼굴. 그럼에도 내가 이제껏 봐온 것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어서, 오히려 이 새끼가 미쳤나 싶었다. 너는 침묵 속에서 두 눈을 깜빡였다. 내가 왜 말이 없나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왜? 목 말라?"

     

    걱정하는 기색에 바로 입을 열려다가, 손 안 쓰고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고개만 끄덕였다. 너가 부엌으로 간 사이 몸을 일으키고자 팔을 움직이자, 철그럭하는 소리와 함께 저지당했다. 금속 수갑이 손목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sm플레이? 아니 그보다, 어제 내가 대체 뭘한 거지? 아니, 마지막 기억이 어제의 것은 맞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에 입술이 차 시선을 들어보니 네가 입에 물컵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물은 시원했다. 조금은 미묘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있지 쵸로마츠."

    "응?"

    "나 어쩌다 여기 온 거지 "

     

    너는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잘못 골랐음을 직감했다. 불안해 보였다. "쵸로마츠?" 그 말을 듣고 달려왔을까, 수마가 지척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기억 안 나, 형? P-21로 가다가 바이크가 오류를 일으켰었어. 위험했으니까.. 형 완전 정신도 못 차리고,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길래 묶어둘 수밖에 없었어."

    "..응."

    "졸리면 한숨 더 자. 배고플 테니까 밥해놓을게."

     

    진짜 졸려. 이상할 정도로. 물의 묘한 맛이 입에서 가시지 않는다. 조금 쓴 것도 같고.

     

    "아, 그런데 오소마츠 형. 푸-.."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푸- 라고? 아니, 후, 였던가. 그런 거 상관없이 뭔 소린지 짐작 안 가잖아. 푸나 후로 시작하는 단어 따위 생각 안 난다고. 푸념? 후회? 

     

     

    *-*-*

     

    "다녀왔어!"

     

    쿠션에 잠기듯 가라앉아 있으면, 너가 높게 소리치며 집에 돌아왔다. 언제 돌아오는지는 네가 어디에 갔는지에 따라 달랐다. 너는 이번에 Ro-7에 다녀왔다. 가게 근처의 X-9 행성계의 I-1의 주기로 널 기다린 시간을 환산하자면, 9주기 정도 되었다. 그러나 너가 정말 Ro-7에만 다녀왔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넌 같은 곳도 늘 다른 경로로 가니까. 이번에는 어디를 들렀을지 모르지. Ma-в 근처로 돌아서 갔을지 어떻게 아는가? 그 근처에는 시간이 항상 잡혀있으니, 나에게 9주기였던 시간이 네게는 90주기만큼 이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떠나지 않는 불안감에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에? Ro-7. 많이 기다렸어? 얼마 안 걸린 줄 알았는데~."

     

    많이 기다렸어. 내가 널 못 보는 사이 너에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걱정하면서. 너는 내 옆을 스쳐지나며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렸을 적 자주 들이마쉬었던 것 같은 향이 난다.

     

    "아, 오는 길에 이치마츠한테 들리기는 했어."

     

    이치마츠의 학교는 Ro-7로부터 여기보다 더 먼데?

     

    말을 삼켰다. 여기서 더 물으면 내가 집착하는 애인처럼 보일까봐서. 나는 너한테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너는 작은 종이 울리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 무릎 위로 누웠다. 집 안이 조금씩 네 향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자 했다.

     

     

    -*-

     

    그 때는 손님이 드물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손님이 드물었다. 가장 가까운 행성계인 X-9 행성계에서, I-1가 X-9을 한 번을 도는 동안 손님이 단 둘밖에 오지 않았을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가 한 층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에 내 가게에는 쥬시마츠가 있었다. 우리집 오남은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 날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묻자 쥬시마츠는 서러운 듯 고개를 무너트렸다. 울음소리에 끊어지는 말들은 대충 이러했다. 슬펐단다. 승객이 자신에게 화를 냈단다.

     

    "왜 손님이 화를 냈는데?"

    "가고싶었, 던 곳이, 아니래.."

     

    그게 무슨 개소리지 싶어 나는 귀를 기울였다. 쥬시마츠는 힘겹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손님이, 집에서 창 밖으로 바라볼, 때는, 정말 예쁜 별이었대. 그래서 그 별로 가달래서, 내가 가줬어.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 도 없었어. 거기 사람, 한테 물어보니까, 7년, 7년 전에 그 별이, 죽었단 거야."

     

    그 말은 즉슨 손님의 집은 그 별로부터 7광년 이상 먼 곳이었단 말이다. 워프를 거치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었겠지. 우주열차로도 가기 힘든 곳이었을테다.

     

    "그 손님이 잘못한거야 쥬시마츠. 너가 잘못한 게 아니야. 갈 곳을 알기전해 그곳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건 승객의 몫이지."

    "으응, 하지만.."

    "하지만..?"

    "나도 보, 흐으, 보고싶었는걸, 그 별.."

     

    나는 그제서야 쥬시마츠의 말의 논점을 파악했다. 그는 손님의 감정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있었다. 아마 그 손님은 굉장히 말이 많은 손님이었을 테다. 워프를 타고, 열차가 달리는 중에도 쉴새없이 조잘거리며 쥬시마츠에게 말했겠지. 그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별이 얼마나 찬란한지, 그 별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쥬시마츠는 아름답고, 찬란하고, 사랑스러운 별을 기대했다. 그렇게 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쥬시마츠는 서러웠으리라.

     

    문득 떠오르는 것은, 또 별을 찾아 떠난 너였다. 너는 내게서 별만큼이나 멀리 있었다. 어쩌면 내게 돌아왔을 때조차도 넌 내게 별만큼 멀었다. 너무나 멀어서,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쥬시마츠가 떠난 후 네게 연락했다. 너는 장장 4분만에 받았다. 신호가 여러번의 워프를 타고도 4광분의 거리를 통과해야할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건지, 아니면 네가 늦게 받았는지 모르겠다.

     

    [네네, 오소마츠입니다! 왜 쵸로마츠~?]

    "지금 혹시 어디야?"

    [Te 근대 근처야. 왜? 형아 보고싶은 거?]

    "응."

    [에. 진심..? 와아, 일찍 가야겠네! 쵸로링 더 안 기다리게!]

    "내일 X:I-1에서 볼 수 있어?"

     

    너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초조했다. 왜 대답이 없는지, 지금 Te 근대 근처인 것은 맞는지가 궁금했다. 신호가 네게 달려 도착하는 시간인 4분, 내가 모르는 그 공백의 4분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 4분간 네가 뭘 했는지 궁금했다.

     

    [응, 갈 수 있어.]

    "..응."

    [최대한 빨리 갈테니까.. 음 바이크 고장나면 하나 사줘?]

     

    장난스레 덧붙이는 네 말에 대답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

     

    "일어났어? 새우볶음밥 아직 좋아하지."

     

    '아직'? 이라니, 뭐지 저 해괴망측한 말은. 일단 좋아하는 것은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부드러운 시트가 턱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줄 알았다.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미지근한 온도의 수갑이 여전히 내 손목을 감싸, 침대로부터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다 먹으면 디저트 줄게. 아, 순식간에 자버려서 못 물어봤는데, 푸딩-.."

    "아-!! 푸딩이었냐고 그거?!!"

    "..아? 응. 뭐야, 뭔데 그런 반응이야?"

    "꿈 속에서 한참 고민했단 말이야. 푸로 시작하는 단어가 뭐 있지, 하고.. 그런데 푸딩이었다니~!"

    "..응. 푸딩 좋아해?"

    "응? 알잖아. 복숭아맛이지?"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맛 사올지 물어보려던 거였어. 복숭아맛 있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간에 복숭아맛이 있으면 됐다. 일단 목이 약간 마르기도 해서 푸딩같은 것이 당겼으니까. 너는 침대 옆 협탁에 그릇과 식기를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반들거리는 새우볶음밥에서 따뜻한 김이 한 줌씩 올라왔다. 나는 수갑이 다른 곳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 한 입을 입에 넣었다. 사람이 무슨 이유에든 간에 요리를 시작하면 일단 느는구나. 돈 아깝다고 배달음식을 멀리하기 시작하던 네 요리실력의 발전속도에 감탄했다. 앞으로는 배달음식이 돈 아까워서가 아니라 맛없어서 안 사먹게 될수도 있겠다. 음식당번을 네가 대부분 차지하는 것으로 바꿔버릴까 고민하다가, 주변이 이상하게 조용하단 걸 깨닫고 널 보았다. 너는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난 저 눈이 싫다.

     

    "어제? 였나. 쵸로마츠 나한테 X:I-1로 와달라고 했었지."

    "지구 자전속도로 환산하면, 3일 전이야."

    "아 그래? 아무튼 간에, 그럼 난 거기로 갔겠지?"

    "그랬지."

    "바이크가 고장났어?"

    "응."

    "나 제정신 아니었고?"

    "응."

    "그래서 묶어둔거지."

    "..응."

     

    네 눈은 이제 빛을 찾아볼 수 없이 죽어있었다. 손끝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묶여있는 건 나잖아? 감금범이 그렇게 겁먹어도 돼? 농담삼아 묻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지금 네 상태로 보아서는 그런 농담이 전혀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 싶었다. 나는 네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만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응. 그럼 이걸로 끝."

    "..뭐가,"

    "형아 밥 다 먹었어요 쵸로링~, 푸딩 주세요!"

    "아?"

    "에 진짜 다 먹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 그래. 푸딩 가져올게, 기다려."

     

    네가 가져온 푸딩은 말캉한 감촉의 연분홍색 복숭아 푸딩이었다. 조금 시원한 온도. 나는 네가 모를 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입 안에 밀어넣었다.

     

     

    -*-

     

    "있잖아."

     

    너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눈을 마주치자 옷깃을 잡아온다. 아차피 묶여서 어디 가지 못 하는걸. 뭘 걱정하는 거야? 너는 연신 몸을 달싹거리며 내게로 몸을 붙였다. 이런 식으로 굴어지는 거야 난 귀여우니 좋지만, 정작 그렇게 구는 당사자가 위태로워 보여서 이번엔 사양하고 싶었다.

     

    "응, 쵸로마츠?"

    "..지금 감금된 거란 건 알지?"

    "에 그렇구나. 쵸로마츠 얀데레?"

    "거짓말 마 알고있었으면서. 왜 안 말하는 거야."

    "뭘?"

     

    너는 말하기 싫어보였다. 괜히 미뤘나. 그냥 알아먹은 대로 대답해주는 게 좋았으려나. 하지만 그것도 싫어하면서. 말을 고르느라 머리가 아파보인다.

     

    "풀어달라고."

     

    한참 머뭇거린 끝에 네가 말한 것은 간단했다. 물론 내가 알아먹은 그대로의 의미인 말이었던 것으로 결론났다. 나는 내가 여기에 온지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해봤다. 몇 번 배가 고팠더라? 아니, 알 게 뭐야. 하루도 안 지난 기분인데. 너는 내가 말이 없자 초조하게 몇마디 더 붙여왔다.

     

    "넌 싸돌아 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갇혀있는 건 네 성격에 안 맞는 거 알아.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랬으면 쌍욕을 박고도 남았겠지."

    "그렇지."

    "그럼 왜 나한테는 그러지 않아?"

    "쵸로마츠 몰라서 묻는 거 아니지."

     

    뒤늦게나마 그렇게 받아치기 보단 낯간지러운 말이라도 곱게 해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너는 고개를 숙였다. 손이 묶여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손을 뻗어볼려다 거둬들이길 반복했다.

     

    "..몰라."

     

    진짜 괜한 어리광이네, 너.

     

    "내가 널 사랑해서."

     

    그래서 궁금했다.

     

    "뭐가 걱정이야, 쵸로마츠."

     

    걱정많은 네가 이번엔 또 뭘로 걱정하고 머리 아파하는지가 궁금했다.

     

    "난 너가 원한다면 계속 여기에 있을거야."

    "내가 평생 있어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럼 평생 있어주지 뭐. 내가 그래줄 거라는 거 알잖아."

    "몰라 그딴 거."

     

    알면서. 라고 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 들어 본 네 얼굴은 정말로 모른단 듯, 불신 가득한 눈을 하고 있어서, 도저히 아는 눈치가 아니어서 그렇게 답할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모르겠단 거야. 난 늘 네 손바닥 위에서 뒹굴고만 살았는데, 네가 네 손을 잃어버리면 그 위의 난 어쩌라고? 조금은 답답했다. 그와 동시에, 날 잃어버린 네가 불쌍해서, 난 여전히 널 쥐고 있는데 너는 날 전부 잃은 것처럼 구는 것이 불쌍해서, 내가 널 사랑해서,

     

    "난 그럴거야."

     

    하고, 확답해주었다. 네 눈에 눈물이 맺혀 들었다. 조금 붉어진 콧등이 안쓰러워 보였다면 화내겠지.

     

    "못 믿겠어."

     

    아니 뭐 어쩌란 거지.

     

    "난 네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불안했어. 우주란 곳이 그냥 넓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똑같이 흐르는 곳도 아니잖아. 내가 보내지 않은 시간을 너는 얼마나 보냈을지, 그 시간동안 네가 뭘 했을지 계속 생각했다고. 넌 수업시간 때 잤으니 알련지 모르겠지만, 빛은 1초에 299,792,458m를 가. 즉 지금 내가 보는 너도 나와 같은 시간의 네가 아니라, 빛이 나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시간만큼 과거의 너인 거야.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나는 과거의 너를 보게 되겠지. 그럼 그 과거에서부터 진짜 현재까지의 너는 내 눈이 안 닿는 곳에 있단 말이잖아. 난 그게 불안했어. 네가 멀리 가지 않기를 바랐어. 그래서 널 이 꼴로 만들었고."

    "그런데?"

    "..부족해."

     

    툭, 하고, 이 성에 첫 번째 비가 내렸다.

     

    "더 가까이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데 부족하다고."

    "..."

    "어떻게 하면 더 가까워질지 모르겠어. 빛이 너무 느려. 넌 너무 멀리 있잖아."

     

    이렇게 절절한 애원이라던가, 슬픈 고백같은 거 평생 들을 생각 없었다. 이렇게 멍청한 고민이 탄생하는 복잡한 사고회로의 멍청한 원리 역시도 알 생각 없었다. 알아버렸지만. 이젠 정말로 이 수갑 귀찮은데. 손도 못 뻗고, 안아달라는 제스쳐도 못 취하고.. 적어도 품에 안고 달래면 이렇게까지 서럽게 울지는 않을 텐데. 나는 손목을 조금 달싹여보았다. 금속이 마찰하며 끼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흐느끼기 시작한 네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강하게 손목을 비튼다.

     

    "어떡하면 조금도 빠짐없이 널 눈에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넌 이미 그러고 있는걸. 그나저나 쵸로마츠, 이런 애들 장난감 수갑같은 걸로 날 묶어뒀던 거야? 탈출 너무 쉽잖아.

     

    "너가 거기 가만히 있는 걸로는 부족해."

     

    그럼 칼로 찔러 죽이기라도 하게? 신주쿠 사건(도쿄 신주쿠에서 얀데레녀가 짝사랑하는 남성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 패러디 삼아? 나의 쵸로마츠가 범죄자가 되기 전에 수갑이 풀려야 할 텐데, 걱정이네 형아는.

     

    "아직 날 사랑해?"

    "응."

     

    조금도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눈물에 한아름 젖어 날 응시하는 네 눈빛이 꽤 서글펐다.

     

    "진심이야? 너 지금 나한테 감금돼.."

     

    달그락, 하고. 수갑이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생각할 새도 없이 너는 몸을 일으켜 날 끌어당겼다. 이대로 목이라도 졸리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 일단 한 대는 맞을 것 같다. 네가 만약 내가 바라는 만큼 변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까지 내가 끌려갈까 가늠해보았다. 한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형?" 하고, 짧게 널 불렀다. 이대로라면,

     

    "-윽."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이 멍청이가 주먹 갈 데랑 어깨 갈 데 구분을 못 하네.

     

    "쵸로마츠."

     

    욕이라도 하겠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네가 내 머리를 네 어깨로 강하게 누르고 있는 통에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일단, 난 널 사랑해. 네가 날 몇 번을 더 묶어서 잡아놓던 간에 상관 없어. 내가 여기 있길 바라면 잡혀있어줄거고, 내가 도망가길 바라면 도망가 줄게. 그런데 그러고도 너가 불안하다면 형아가 어째야될지 잘 모르겠네. 내가 그래주면 넌 안 불안해질 자신 있어? 없잖아? 안다고."

     

    그럴 자신이야 없었다. 사실 너가 정말 내 곁에 이렇게 매여있기를 바라는지,  도망쳐주길 바라는지도 잘 모르겠다. 난 그냥, 예전처럼 너에 대한 확신을 되찾고 싶었다. 네가 내 손 안에서만 나뒹구는 것이 좋았다. 그러길 바랐다. 그 이상으로 네가 나가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네가 목 묶인 개처럼 내게만 구속돼 있는 것은 싫었다. 난 제멋대로인 널 좋아했으니까. 네가 내게 맞춰주는 꼴은 싫었다.

     

    "것보다 쵸로마츠, 수업 때 안 잤어도 그런 긴 숫자 기억 못 하거든?! 방금 들었지만 벌써 가물가물하다고. 299.. 잠깐, 299..?"

     

    299,792,458m/s 라고 이 몰상식아. 우주를 여행하는 입장이면 그런 건 상식으로 외우란 말이야.

     

    "아무튼.. 아, 내가 예전에 Ma-в 근처에 갔던 썰 풀어준 거 기억 나? 술 마셨을 때라 모를려나, 너 필름 잘 끊기니까. 아, 하기사 그때 기억이 나면 이런 일이 없었겠구나."

     

    뭐야. 무슨 말이었어.

     

    "형아 그때 취해서 무지막지한 말 해버렸으니까.. 딱 한 번만 더야, 쵸로마츠. 잘 들어. 그곳에 갔을 때, 그 근처를 돌면서 재미삼아서 별조각 몇 개를 던지며 놀았는데, 난 그때 네 생각을 했어. 그러니까.. 음-. 개같이 말해도 잘 알아먹어. 블랙홀의 강한 중력 때문에 생기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거, 알지. 난 중력 때문에 시간의 지평선 안에 끌려간 별조각이 나 같다고 생각했어."

     

    진짜 개같이 말하네. 뭘 말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쵸로마츠, 내가 그때 했던 말은.. 아, 그냥 난 널 정말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건 거의 다 너랑 관련된 거야. 넌 날 안 좋아하는 네가 상상이 가? 나도 안 간다고. 내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다못해 내 바이크에 있는 프린트도 다 너랑 관련된 거야. 아니 근데 혹시 그거 타고 갈까봐 부숴버린 건 아니지? 나 우리 색깔 넣고 싶어서 주문제작까지 맡겼던 건데."

     

    망할. 그런 건줄 알았으면 안 버리는 건데. X-9에 던져버렸어, 미안.

     

    "아니아니, 정말로, 정말로 결론은 말이야 쵸로마츠."

     

    응.

     

    "난 조금도 빠짐없이 네 거야. 내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역시 그렇고, 네 사건의 지평선 안에 있어서 미래가 있는 건 불가능해. 네가 보는 내가 나의 전부야. 오히려 조금은 안타까워 하는 건? 나 이미 너한테 끌어당겨질 대로 끌어당겨져서, 바이크로도 워프로도 못 빠져나가는데. 너 완전 나한테 멱살 잡힌 거라고."

     

    그제서야 내 머리를 누르던 네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하지만 이제 내가 말할 생각이 없어서, 네 어깨에 기댄 채 울음에 이상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건 멱살 잡은 게 아니라 멱살 잡힌 거라고, 하고 타박하고 싶었다. 말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내가 이 말을 하고싶은 줄 알테니까. 네가 여기 온 날로부터, I-1이 X-9의 주위를 딱 6번 도는 날. 나는 네가 머무르는 내 손을 겨우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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