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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파란에 잠겨죽기를앙스타/와타에이 2025. 3. 21. 12:28
와타에이210714 숨이 가빴다. 찬 바닷물에 담궈져있던 그의 손이 미지근하게 느껴져서, 텐쇼인 에이치는 제 얼굴빛이 꼴사나우리만치 창백할 것임을 알았다. 희고 얇은 손가락이 제 입술을 스친다. 파르르. 떨리는 것은 그인가, 나인가? 그것도 아니면 둘 사이를 매개하는 무언가인가? 뒷목에서부터 올라온 열이 머리를 잠식해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속에서 미온한 온도도 달가워 에이치는 젖은 손을 붙잡고 얼굴을 부볐다. 빙글, 빙글, 파도가 발목에 부닥쳐 온다. "-에이치. 정신 차려요." 부드러운 목소리. 품에 안겨드는 몸을 밀어내는 다정한 손길. 그게 잔인하게만 느껴져서, 에이치는 흐느끼며 울었다. 죽어가는 몸뚱아리가 삶의 극지에서 정신을 으스러트린 탓에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슬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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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해, 잔 다르크!앙스타/와타에이 2025. 3. 21. 12:26
와타에이 220414 잔 다르크가 누구냐 하면-위인전에 나오는 그 위대한 여성이 아니라면-, 히비키 와타루가 어릴 적부터 키운 비둘기 중 하나였다. 개중에서도 유난히 가볍고 날갯짓이 힘찬지라, 비행을 아주 잘했다. 한때는 다리에 카메라를 달고 몇 시간씩이나 마시로 토모야의 스토킹을 하기도 했으니 그가 자신의 비행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와타루가 제게만 유독 자주 부탁을 하는 것은 자신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는 언제나 그런 사소한 부탁들을 기꺼이 반겼다. 그날 역시, 잔 다르크는 제 가슴팍에 가방을 다는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다리에 카메라를 달았을 때와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쏠리지도 않고 가벼워서 편했다. “잔 다르크는 똑똑하니까, 여기가 어딘지 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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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ish bird.지박소년 하나코군/하나네네 2025. 3. 21. 12:25
하나네네200208 0. It is a foolish bird that defiles its own nest. 1. "네네 자매님,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건 아닌가요?" 꾸벅, 꾸벅 졸던 네네의 눈이 저절로 반짝 떠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우려스런 눈빛을 한 아오이가 자신을 가만히 살피고 있었다. 본의아니게 걱정을 끼쳐버렸다. 서둘러 부정한다. "아, 아니에요. 잠은 잘 자고 있답니다! 아하하..""정말인가요? 안색이 많이 좋지 않아요.""아.." 그런가? 손끝으로 살며시 제 얼굴을 더듬거린 네네가 눈을 연신 깜빡였다. 확실히 요즘 잠을 설치긴 했다. 무슨 일이 있다기보단,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네네는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힘겹게 말문을 텄다.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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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지박소년 하나코군/하나네네 2025. 3. 21. 12:24
하나네네200204 살릴 자신은 없었다. 사실, 살리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해본 적 자체가 없었다. 유기 아마네란 환자는 그만큼 가망이 없는 환자였다. 그렇기에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거겠지. 머리카락이 흩날려 시야를 가렸다. 바람이 차다. 고개를 돌려 타닥이는 작은 불꽃을 눈에 담았다. 2012년 11월 8일, 오후 2시 29분. 너는 더이상 산 사람이 아니다. *-*-* "여기서 나가는 사람의 9할은 관짝에 실려나간다면서요?" 이 곳 호스피스에서 우스갯소리로들 하는 말이다. 내가 네 병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들은 소리기도 했다. 너는 그런 무서운 소리를,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 하나 깜빡않고 물었다. 가슴이 철렁이는 느낌. 그 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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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지박소년 하나코군/하나네네 2025. 3. 21. 12:22
하나네네200120 카모메 학원의 문화제는 상당히 크고 성대한 데다, 부스 개최를 희망하는 동아리가 많아 교실이 부족할 때가 많다. 때문에, 카모메 학원 문화제 때에는 구교사 역시 사용된다. 구교사 3층의 여자화장실에 묶인, 화장실의 하나코씨에게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축제다. 몇십년 전에야 축제 때마다 날 듯이 기뻐했었지만, 이 세월을 살아놓고 축제 따위에 두근거리는 건 무리지, 하고, 하나코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서, 이번 축제도 작년, 재작년과 같이 진부하고 시끄럽게만 지나갈 줄 알았는데.. "하나코 군! 모처럼의 축제잖아. 분명 재밌을 거야, 같이 가자!"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나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질질 끌려가는 제 뒷덜미에 숨이 막히지 않고자 옷깃을 끌어내렸다. 차마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