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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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빌의 절벽.육쌍둥이/쵸로오소 2020. 4. 25. 01:15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그 말 외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만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이 졸려 잠에서 깨는 느낌은 유쾌하지 못하다 못해 엿같았으니까. "아, 깼군요." 하고, 목줄을 잡아당겨 억지로 잠에서 깨운 주제에 평온한 어조로 저리 말하던 노인네의 목소리가 아직껏 생생했다. 물론, 그때 본 네 눈과 비교하자면 한참은 흐린 기억이지만은. 어딘가 초점이 비틀린 눈. 내 얼굴을 본떠 만든 듯 똑닮은 얼굴. 기이하리만치 이질적인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산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너는 잠시 간의 침묵 후, 짜여진 각본을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서서히 내게 눈의 초점을 맞췄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작스레 밀려오는 정체모를 떨림에 몸을 움츠렸었다.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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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792,458.육쌍둥이/쵸로오소 2020. 4. 25. 01:14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이 수백 개의 움직이는 검은 다리였을 때, 내가 목만 잠기지만 않았더라도 4옥타브의 고음까지는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난 그만큼 놀랐다. 그에 반해 너는 두 눈을 한 번 더 깜빡이고는, 얼굴을 조금 뒤로 빼고 해사하게 웃었다. "일어났어?" 조금 비틀거리는 테가 역력한 얼굴. 그럼에도 내가 이제껏 봐온 것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어서, 오히려 이 새끼가 미쳤나 싶었다. 너는 침묵 속에서 두 눈을 깜빡였다. 내가 왜 말이 없나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왜? 목 말라?" 걱정하는 기색에 바로 입을 열려다가, 손 안 쓰고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을 듯 싶어 고개만 끄덕였다. 너가 부엌으로 간 사이 몸을 일으키고자 팔을 움직이자, 철그럭하는 소리와 함께 저지당했다. 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