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E_ 2020. 4. 25. 01:22

 

 

 

눈이 떠졌다. 밖은 아직 해도 뜨지않은 새벽이었다. 사람의 평균 기상시간이 언제인지는 감이 안 왔으나, 내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는 인간이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쩐지 따가운 눈가를 조심히 흝어내 시야를 선명히 했다. 방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공간, 킹사이즈라고 표현하기에도 큰 침대. 조금 떨어진 거리에 거울이 있었다. 그 안에서 부은 눈을 깜빡이는 것이, 아무래도 나였다.

 

아니 잠깐, 원래 자기 얼굴도 모르는 게 정상인가?

 

불안함이 목 뒤를 타고오르는 느낌에 기억을 더듬었다. 아니, 더듬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럴 기억이 없었다. 내가 어제 뭘 했더라?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내가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떠나,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내 기억의 시작은 오늘 아침이었다. 들춰진 이불에 찬 공기가 들어와 추운지, 옆에 있던 사람이 뒤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음-.. 쵸로마츠..?" 저건 내 이름일까? 졸린 눈을 부비던 손이 얼굴 위에서 떠나자, 비로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얼굴이었다.

 

"-?!"

"-에, 뭐야. 왜 그렇게 놀라는데..?"

"왜, 왜 내 얼굴이 여기에.."

"..뭐?"

 

나랑 같은 얼굴을 한 남자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방금 막 일어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창밖으로부터 들려왔다.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추정됩니다. 혹 근래에 큰 충격을 받으신 일이 있지는 않으셨는지.."

"생각해보니, 어제 계단에서 발을 헛딛으셨습니다. 몸에 이상이 없으신 듯해 의원을 부르지 않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 면목이 없네요."

 

내 앞에서 진지한 듯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어제 계단에서 굴렀다고? 기억이 없었다. 기억상실증이라니, 당연한건가 싶지만은.

 

"안정을 취하시면 금방 기억이 돌아올 것이니, 심려 마시지요. 폐하."

"아, 예.."

"아니요, 폐하. 의사는 폐하의 손아랫사람이니 하대를 하셔야 맞습니다."

"아.."

 

내 눈은 분명 지금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존댓말이 입에 붙어있는데, 내가 정말 '폐하'가 맞나?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며 의사의 뒤에서 날 보고있던 쵸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시지요, 알겠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저거 분명 즐기는 얼굴인데. 못 미덥기 그지없으나, 그가 내 최측근이었다고 하니 잠자코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못해 "알겠다", 하고 대답하니, 한 번 더 위기가 왔는지 고개를 돌리고 큭큭거렸다. 시발, 저게 내 최측근이 맞나? 첩자새끼같은데.

 

"한동안 폐하 앞의 업무를 줄이라고 전해두겠습니다."

"으, 응.."

 

가방을 들고 방을 나가는 의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얼굴을 싹 바꾸고 태연하게 서있는 쵸로마츠의 쪽으로 눈을 치켜떴다. 노려보는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싱글 잘도 웃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폐하?"

"..제가 폐하인게 맞아요?"

"어허, '제'가 아니고 '짐'이겠죠, 폐하. 하대를 하셔야 하고요. 그리고 폐하는 폐하가 맞으십니다."

"..내가 쵸로마츠라며?"

"제가요?"

 

눈을 동그랗게 하고는, 언제 제가 그랬냐며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앉은 자세가 익숙치 않다.

 

"아침에, 나한테 분명 쵸로마츠라고 했잖아."

"아, 말실수였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말실수할 수가 있나?"

"저와 폐하 얼굴이 같은데다가, 하루종일 한 몸처럼 지내다보니 자꾸 제가 폐하같고 폐하가 저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저게 무슨 괴변이냐. 하지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르지, 내 집사는 굉장한 또라이였을지도. 말하는 것으로 봐도 그런 감이 없잖아 있고.

 

"그보다 폐하, 보셔야 할 업무가 많습니다."

"..의사가 내 앞의 업무를 줄이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런데, 폐하가 어제 업무를 안 하셔서요."

 

그렇게 말하며 쵸로마츠가 열어 보여준 서랍 안은 검은 글씨가 수를 놓은 양피지로 가득했다. -내가 이것들을 다 쌓아두었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쵸로마츠를 올려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양피지를 책상 위로 올렸다.

 

"오늘 안에 마치시면 내일부터는 쉴 수 있겠습니다, 폐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너, 내 집사지?"

"오, 네."

"도와줘."

"안 되는데요?"

"하?! 왜!"

"저는 오늘 휴가니까요."

 

얼굴을 마주한 채눈을 멍하니 깜빡이고만 있자, 쵸로마츠가 웃음섞인 목소리를 하고 책상 위를 가리켰다. "저기, 제일 위에 있는 양피지가 휴가신청서입니다." 확인해보니 정말 그랬다. 위에서 내려찍기라도 한듯 국새가 난폭하게 찍혀있긴 했지만, 분명 제대로 국새가 찍힌 허용된 서류였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만큼 빡쳤었던 게 분명하다. 분명 이 놈이 원인이었겠지. "왜 신청한건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제가 오늘 약혼식이 있어서요."

 

사유란에는 정말 약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남의 것도 아닌, 눈 앞의 인간의 약혼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있는거야?!"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오늘 약혼식이 있는 인간이, 왜 아직까지 식장이 아니라 여기 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장소를 보니, 오늘 새벽에 출발해야 겨우 시간이 맞았을 것이다. 지금은 진작 늦었으리라. 쵸로마츠는 당연한 것을 묻냔 듯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야, 폐하가.."

"..내가, 뭐?"

"..아프시길래."

 

뭐라 변명할 말이 없어 받아칠 수가 없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방에 박혀있었을 것이다. 괜히 몰려오는 미안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쵸로마츠의 어깨를 잡았다. "됐으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가." 재촉하듯 말하자 얼굴이 묘하게 뒤틀린다.

 

"신부가 기다릴까봐요?"

"당연한 거 아냐! 약혼식인데,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어..!"

 

오늘 신랑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여유로울 수가 있나? 문득 드는 의문을 뿌리치고 쵸로마츠를 방 밖으로 밀어냈다. 항복했단 듯 두 손을 하늘로 들어올린 쵸로마츠가 순순히 복도에 섰다.

 

"아, 그런데 폐하."

"또 뭐."

"그러고보니 제 약혼반지가 폐하 서랍 안에 있어서요. 좀 가져다주실래요?"

"그게 왜 거기에 있는데?!"

"어쩌다보니까?"

 

태평히 대답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서랍을 급히 열어 뒤졌다. 와인색 벨벳으로 된 보석함을 찾아내, 열어서 확인했다. 안에 반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정교하게 세공된 은색 링에 박힌 작은 루비를 보고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반지가 하나밖에 없는데..?!" 아픈 머리를 붙잡고 겨우겨우 소리치자, 쵸로마츠가 방을 가로질러 걸어와 함에서 반지를 빼냈다. 짙은 미소가 걸린 얼굴.

 

"나머지 하나가 어딨는지는 폐하가 알겠죠."

"..그게 무슨.." 

 

키득키득 웃은 쵸로마츠가 약지에 제 반지를 끼워넣었다. 신기할 정도로 꼭 맞아 들어갔다. 속이 울리는 감각에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서 딱딱한 반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널 가게 둘 리가 없잖아, 쵸로마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검게 잡아먹혔다.

 

 

*

 

"약혼하려고 합니다."

"누구, 나랑?"

 

"남자는 후궁에도 못 들이는데~." 실없이 농담을 건네는 너를 보다가, 품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이게 뭐냐며 받아든 네가 내용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그렇지. 서류는 거짓말을 못하니까. 내 쪽을 노려보는 눈이 살벌했다. 호를 그린 입술이 화에 저민 듯 부들거렸다. "이게 뭔데?" 억눌린 목소리. 양피지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려있다.

 

"휴가신청서입니다. 바로 내일이라고 해서,"

"내일 뭐하는 거냐고."

"..약혼식이 있습니다."

"누구랑."

"공작가의 영애와 합니다."

"누구 좋으라고?"

 

그야 내 양친되는 인간들이겠지.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답지않게 깊은 한숨을 내쉰 네가 서랍에서 국새를 꺼내들었다. "아, 이걸 찍어달라고?" 어이가 없단 듯 피식, 하고 새어나오는 숨에 불안이 엄습했다. 차라리 네가 허락해주지 않길 바랐다. 언젠가는 형식상으로라도 이루어질 약혼이라고 하더라도, 며칠 더 미뤄지기를 바랐다. 너는 비뚤어진 웃음을 하고는 날 바라보다가, 서류 위로 국새를 내리찍었다. 손목이 상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소리가 방을 메웠다. 국새가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좋아, 허락받으니까?"

 

적막 속에서, 그렇게 묻는 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시울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좋을 리가 없었다. 넓은 방 안에 마음이 성한 사람 하나가 없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서 서류를 들었다. 한낱 양피지가 사람 속을 이렇게도 망칠 수 있나 싶었다. 형편없이 찍힌 붉은 인장을 바라보다가, 너와 눈을 마주했다. 너는 잔뜩 일그러진 눈동자를 하고,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눈을 보고있자니, 도저히 건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릴 게 있습니다."

"뭐, 이번에는 숨겨둔 애라도 보여주게?"

 

비꼬는 말을 무시하고 옷 안을 살폈다.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손끝으로 더듬어 찾던 것을 겨우 꺼냈다. 보드라운 감촉의 정사각형 함이었다.

 

"..그게 뭔데."

"..폐하 겁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보석함 안에는 그의 몫의 반지가 있을 것이다. 차마 그것은 버릴 수가 없어 어제밤까지도 안고 울었으니 분명 제대로 들어있으리라. 받아드는 손이 나와 마찬가지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떠 눈물을 떨궈냈다. 맑아진 시야에 마찬가지로 엉망인 얼굴이 있었다.

 

"쵸로마츠."

"네."

"약혼, 하기 싫은거지?"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거짓말로라도 이 관계를 깔끔히 청산해야한단 걸 알면서도, 그럴 수가 없었다.

 

"-네."

 

그 다음 기억은 희미하다. 눈물에 젖은 밤을 보냈다. 그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어두운 시야이더라도 보다 그를 선명히 담으려고 열심히 눈물을 훔쳤다. 밤새가 눈을 뜰 때쯤,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옷을 걸치며 생각했던 것이 떠오른다.

 

'차라리 내일이 망가져버리면 좋을텐데.'

 

그렇게, 따스한 품에 얼굴을 묻고 잠에 들었다.

 

 

*

 

"-아, 일어났어?"

 

잠에서 깼을 때는 방 안이 온통 붉었다. 네 색이었다. 창문으로부터 비치는 노을에 네 얼굴에 검게 그림자가 져있었다. 그럼에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진한 멍이 구석구석에 들어있었다.

 

"-뭐, 어떻게 된 거야?!"

"오, 반말 듣기 좋네."

"-!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이 왜..!"

"네 약혼식에서 깽판 좀 쳤더니 네 아빠가 후려패던데."

 

미친놈인가? 미친놈이 맞지만. 얼굴에 든 푸른 멍을 조심히 쓸어내리니, 네가 웃으며 내 손에 얼굴을 기댔다. "그보다 정말 반말이 더 듣기 좋은데, 계속 할 생각 없어?" 이 주둥아리는 실없는 소리를 안 하면 뒤지는 건가, 싶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제 약혼식에서 뭘 하신 겁니까..?!"

"좀 대단한 짓을 했지. 호모라서 여자랑 결혼 못 하겠다고 왁왁 소리지르고 왔어."

"뭐요?!!"

"아하핫, 거짓말이야, 거짓말! 주례 보는 목사한테 파양신청 한 게 다야."

"그게.. 도대체.."

 

그게 저 뉘앙스로 할 말인가. 파양신청은 교회에 하는 것이 맞다만은, 주례를 보는 목사님은 그러라고 있는 분이 아닌데! 마냥 좋단 듯 까르륵 웃던 네가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어때?"

 

"뭐가요, 한 순간에 평민 된 기분이요? 아니면 약혼 파기된 기분?"

"어, 그것도 듣고싶어."

"전자는 좆같고, 후자는-.."

 

말을 잇다 말고 숨을 삼켰다. 분해서 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이 막무가내식의 해결방법이 너무나 싫다.

 

"..-망할. 너무, 좋아요."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인데도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서 분했다. 너는 그럴 줄 알았단 듯 말갛게 미소지었다. 뭐가 좋다고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평민이 황제의 집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곧 황실에서 쫒겨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느긋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네가 발간 햇빛에 이리저리 약지의 반지를 비춰봤다. 이 와중에 잘 어울려서, 제대로 골랐구나 싶었다.

 

"좋아. 그럼 마츠노 쵸로마츠가 된 기분은 어때?"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 왜, 사성제도라고 하는 거 있잖아. 옆나라에서 잘 써먹는 걸 보고 늘 언젠가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겨우 첫 사례를 만들었거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면 오히려 더 혼란스럽겠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았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확하게 해야 했다.

 

"그럼 계속 폐하의 집사를 해도 됩니까?"

"해도 되냐, 가 아닌데. 쵸로마츠."

 

황혼에 흠뻑 젖은 네가 똑바로 얼굴을 마주한 채 눈을 휘었다. 심장이 부서질듯 크게 뛰었다.

 

"너가 아니면 안 돼."

 

그걸로 모든 게 정리됐다. 나는 이제 세상이 끝나더라도 좋았다.

 

 

*

 

"아, 찾았다-..!"

"찾았어?!"

 

신난 듯 달려오는 구두에 흙이 잔뜩 묻어있다. 그러게 안 도와줘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선 옷만 잔뜩 더러워졌다. 원인은 나지만. 나는 겨우 찾아낸 반지로부터 흙을 긁어 털어내고는 네게로 내밀었다. 기다렸단 듯 받은 네가 작은 페리도트가 박힌 반지와 제 것을 세심히 뜯어봤다. 박힌 보석만 다를 뿐 세공과 사이즈는 완벽히 똑같아 볼 것이 없을텐데도 그랬다.

 

"오, 완전 똑같네. 좋아, 좋아."

"똑같이 맞췄으니까 당연하죠."

"역시 그렇지~. 그보다, 이걸 왜 창밖에 버렸어? 아빠한테 들킬까봐?"

 

그런 건 아니었다. 그놈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데 들키긴 무슨. 새 반지인 줄도 몰랐을테지.

 

"폐하를 포기하려고요."

"에? 그럼 내 반지는 왜 멀쩡해?"

"..그건 차마 못 버리겠어서."

 

주인 될 사람한테 한 번 끼워줘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게 서러움의 극치여서 던지는 시늉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다. 결국 약혼 전 날에 줘버렸지. 지금은 제대로 주인 손에 끼워져있고. 너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반지를 내려다보다가, 씨익 웃으며 빈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결국 날 못 포기했단 거지?"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바닥 위로 손을 겹쳤다.

 

"네. 그랬네요."

 

내가 당신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짝이는 반지는 겨우 이틀 만에 내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