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e 2020. 4. 25. 01:19

 

노을.

 

 

개그만화의 등장인물이 역경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탱크 안에 든 여분의 산소를 나타내는 바를 내려다보며, 쵸로마츠가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통이나 불행 없이도 남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연료탱크도 산소탱크도 바닥을 보이는 우주선에 버려진 자신이 불쌍하므로 있어도 없는 셈 칠 것이다.

 

"-이거 뭔데?!"

 

이번에는 쥬시마츠도 없다. 저 도움 안 되는 장남새끼와 단 둘인 것이다-물론 바보가 둘 있다고 백지장 2장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겠지만-. 이 텅 빈 무중력 공간에. 쵸로마츠는 조종석의 스크린에 올라온 그래프들을 열심히 눈으로 흝었다. 우주선과 지구의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크다. 여기에서 집까지 갈 수 있을만큼의 연료는 없다. 창문 너머를 보고 혼자 상황파악을 마쳤는지, 손을 열심히 휘적거리며 우주선 안을 헤엄쳐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어깨를 붙들었다.

 

"또 우주야? 질리네."

"됐고. 어쩔 거야. 집에 못 가."

"에, 그럼 우리 여기서 죽어?"

"무작정 포기하지 말고..! 어쩔 거냐고."

"어쩔 건데?"

"내가 방금 물어본 게 그거잖아?!"


틀렸어. 이 새끼랑은 뭘 해도 안 된다. 자신이 개그만화에 있어서 불행한 인간이라면 이 새끼는 개그만화의 주인공이 천성인 인간이었다. 지구멸망 1초 전에도 깔깔 웃으며 즐길 놈한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같은 것을 묻다니. 쵸로마츠는 한숨과 함께 인정했다. 답이 없다.


오소마츠는 가만히 그래프를 흝어보다가, 스크린 위에 올라온 점 하나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연료가 없어도 여기까지는 갈 수 있지 않아?" 제법 솔깃한 소리였다. 우주 정거장같은 곳일지도 몰라. 오소마츠가 가리킨 점은 이곳으로부터 가장 가까웠다. 아마 연료가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웬일로 도움이 돼는 소리를 해?"

"그냥? 지구랑 제일 가까운 행성이 금성이지? 그 왜, 수금지화목토-.."

"하?! 금성은 사람이 못 사는데잖아!"

"아, 들어봐! 금성이 영어로 비너스잖아!"

"그게 뭐."

"엄청 예쁜 여신님이 반겨주지 않을까?! 반짝반짝한 토토코라던가!"

 

쵸로마츠가 차게 식은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또라이 새끼. 기대한 내가 병신이다.

 

 

*-*-*

 

우주선이 멈춘 곳은 우주정거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소마츠가 기대하던 여신 토토코가 있는 곳이냐 하면, 그도 아니었다. 그들이 발을 내리고 선 곳은 사방이 새빨간 행성의 산 중턱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았을 때부터 영 흥미가 가신 듯 시큰둥하던 오소마츠가 붉은 모래를 발끝으로 걷어차고는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화성이겠지."

"지구랑 제일 가까운 데는 금성 아니었어?"

"화성도 가깝잖아."

"수금지화목.. 아, 여기 화성인가?!"

"아니, 방금부터 말했-.."

 

시답잖은 츳코미를 걸어넣던 쵸로마츠가 말을 멈췄다. 우주복 안에 든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번 시나리오의 결말도 전멸인 모양이다. 오소마츠는 붕붕 뜨는 약한 중력이 신기한지 제자리에서 몇 번 뛰어보다가, 키득거리며 쵸로마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왜? 쵸로마츠 또 엄청 늙었네."

"안 늙었어. 걱정하고 있는 거거든."

"맨날 이렇게 되는데 뭘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 눈 앞에 있는 놈은 개그만화의 주인공이 천성인 인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소리를 진심으로 할 수 있을리가 없지. 남은 산소는 10분 가량이다. 만담할 기력도 없다. 한숨소리에 쵸로마츠를 힐끗 흝은 오소마츠가 한 발자국 내딛었다.

 

"어디 가게?"

"산책이라도 해야지. 기껏 화성 왔는데."

"여기가 무슨 유원지냐고.."

"그래서, 쵸로마츠는 안 가게?"

 

한참을 뭐라 꿍얼거리던 쵸로마츠는 결국 화성의 모래에 발자국을 남겼다. 결국에는 따라올 거면서. 씨익 웃은 오소마츠가 신난단 듯 발을 뗐다. 가볍다.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오소마츠가 물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면 태양이 보일까?"

"보통 이 타이밍에는 지구를 찾지 않아?"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쵸로마츠는 힘있게 발목을 꺾었다. 둥실 날아올라 오소마츠보다 한 발자국 먼저 꼭대기에 올라서, 뒤돌아 손을 내민다. "너 잘났다." 다리를 움직일 생각도 않고, 꼼짝 굳어 눈을 깜빡이던 오소마츠가 눈썹을 내렸다.

 

"왜?"

"아무래도 여기는 지구쪽인가봐. 완전 파랗네."

 

쵸로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의 말대로, 분명 눈에 담긴 것은 푸르렀다. "아깝네~." 쵸로마츠가 등 뒤에서 헛소리를 하는 제 형의 팔을 잡아 올렸다. 그제서야 화성의 하늘은 온전히 오소마츠의 두 눈에 담겼다. 오소마츠가 찾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파랗게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헬멧 안에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곧 우주복 내 산소가 고갈됩니다. 산소를 공급해주세요.]

 

[10,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