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e 2025. 3. 21. 12:24

하나네네

200204

 

 

 

살릴 자신은 없었다. 사실, 살리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해본 적 자체가 없었다. 유기 아마네란 환자는 그만큼 가망이 없는 환자였다. 그렇기에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거겠지. 머리카락이 흩날려 시야를 가렸다. 바람이 차다.

 

고개를 돌려 타닥이는 작은 불꽃을 눈에 담았다. 2012년 11월 8일, 오후 2시 29분. 너는 더이상 산 사람이 아니다.

 

 

*-*-*

 

"여기서 나가는 사람의 9할은 관짝에 실려나간다면서요?"

 

이 곳 호스피스에서 우스갯소리로들 하는 말이다. 내가 네 병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들은 소리기도 했다. 너는 그런 무서운 소리를,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 하나 깜빡않고 물었다. 가슴이 철렁이는 느낌. 그 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말을 그리도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참아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음이 일상인 공간에서 나는 3일의 장례보다도 산 사람의 한 순간에 더 울음지었다. 눈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숨을 끊어 쉬며 훌쩍이는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너는 장난이었다며 곧장 내게 다가와 달래듯 등을 토닥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첫 만남이니만큼 우울한 티를 내고싶지 않아 부러 그랬다고. 그 말에 또 한 번 울컥해 울었다. 너는 그때도 다름없이 나를 달랬다. 

 

팩트만 따져보자면, 반박할 수 없는 소리라 더 슬펐다. 9할도 좋게 봐준거지, 사실 이 곳에서 살아나가는 건 무리였다. 호스피스란 본래 그런 곳이니까.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생을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찾는 곳이 이곳이었다. 살아나가는 게 별일이란 소리다. 그런 곳에 왜 사치스럽게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 나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어. 진찰 중 욕을 듣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긋지긋한 병원 분위기를 죽기 전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여길 온 건데, 왜 의사가 여기 있느냐고. 모든 말들에 자신의 죽음이 기본전제로 깔려있는 환자를 대하는 것은 사무치도록 힘들다. 살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치료는 귀찮고 아픈 행위일 뿐이니까, 난 확실히 이곳에서 필요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아마네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죽고싶지 않은걸, 야시로." 그 날은 정말 많이 울었다. 너와 함께한 날들을 되돌아볼수록 흐른 눈물만 보이는 것 같아. 네가 내 감수성을 자꾸 자극해서 그래. '죽고싶지 않'다니, 내가 그 소리를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봤는 줄 알아? 그 말을 해준 건, 너가 처음이었을걸..

 

아마네는 위암 4기였다. 겉으로 봐서는 극심한 저체중인 것 외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혈색이 잘 도는 것은 물론, 먹는 양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잠도 잘 자고, 운동을 즐겼다. 그렇지만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손쓸 도리도 없이, 달력의 숫자가 늘어갈 때마다, 조금씩. 호스피스에 온 지 7달 째, 너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사실 진작부터 움직일 수 없는 상태긴 했다. 아마 내 눈치를 보느라 애써 움직였던 것이겠지. 나 역시 진찰을 돌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네 병실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간단한 업무를 가져와서 보는 것 뿐이었는데, 이상하지. 점점 그 시간이 늘어가서, 나중에는 노트북까지 들고와서 아예 눌러지내버렸잖아. 내가 옆에 있을 때면 늘 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웃음들마저도 날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한다. 넌 너무 착했으니까, 아마네.

 

말 한 마디도 서투르게 하는 법 없이, 긴 생각을 담아 건넸다. 내가 걱정하는 걸 염려해 힘든 날에도 내게 산책을 권해주었다. 입맛이 없을 때도 괜찮다며 한 입, 한 입, 입에 밀어넣었지. 옆에 있어달라고,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늘 내게 넌, 살고싶다고-..

 

아-.. 아마네.

 

3일의 장례에는 덤덤해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눈가가 따가울까? 맺힌 눈물이 떨어져 흐르지 않도록 소매를 올려잡아 닦아냈다. 난 너를, 정말로 살려주고 싶었어. 난 호스피스의 하나뿐인 의사잖아. 날 바라는 사람이 너 하나뿐이더라도, 난 호스피스의 의사잖아. 넌 날 의사답게 만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잖아. 살고싶다고 말하는 네게, 그건 헛된 꿈이 아니라고, 내가 이루어주겠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 너는 여길 살아서 나갈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시야가 일그러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소매로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을 단단한 손이 훔친다.

 

"-울지 않는다고 약속했으면서, 바로 약속 어겨버렸네. 나쁜 야시로."

 

힘껏 눈을 감았다 떠 눈앞을 확인했다. 짓궂은 웃음. 네가 너무 보고싶은 나머지 꿈을 꾸는건지, 아니면 네가 정말 내게 돌아온건지, 잘 모르겠어.

 

"음, 약속을 어긴 건 피차일반이라 할 말은 없지만."

"..아마네..?"

"미안. 천국에 가겠다고 했는데, 가다가 그만뒀어. 야시로가 걱정되더라고-, 이렇게 울고 있을까봐."

 

..어느 쪽이든 좋아. 꿈이든, 현실이든, 네가 살아있어준다면.

 

"역시-, 에, 야시로..?"

 

끌어안은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그래도 역시 상관없었다. 조심스레 내 등을 감싸안는 네 손길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해가 떠서 꺼질 꿈이라면 하늘을 덮을게. 날이 흘러 사라질 신기루라면 시간을 멈출게. 이번엔 네가 사라지지 않게 할게. 네가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 그러니, 아마네.

 

"함께 있어 줘.."

 

소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