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의 밤.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좋아했다. 구름 너머에 가리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달과, 서늘한 공기, 조그맣게 반짝거리는 별빛들, 나즈막한 공기의 울림. 나는 그것들을 사랑해서, 수 천의 달과 마주보고, 수 천의 별과 함께하고, 수 천의 밤을 지새웠다. 내게 있어 밤이란 하루의 3분의 1 그 이상의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커서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나, 별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리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한 번쯤은 그 미래를 의심해보고, 준비했어야 했다고 알았을 때는 진작에 늦어있었다. 별의 이름 옆에 작은 태그를 붙였다. 수많은 0이 뒤따르는 숫자가 그 위에 자리해있다.이치마츠가 그랬었지, 난 여행이나 하면서 유유자적 살 성격은 못 된다고. 나는 그 말에, 너야말로 누굴 가르칠 성격은 못 된다고 한 소리 했던가. 그놈은 멀쩡히 교사일을 하고있고 나는 판매원이나 하고있단 것이 웃프다. 저쪽은 오히려 사직하고 싶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데 말이야. 한숨과 함께 창문을 열어젖혔다. 하늘은 여전히 검고, 반짝거렸다
우주는 늘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변함없이, 라는 말은 우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일 것이다. 몇십 억년을 살아오고, 또 그 배의 시간만큼을 존재할 우주도 그렇게 변한다는데, 기껏해야 100년도 채 안 되는삶을 사는 내가 변하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릴 적과 같은 마음으로 별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면, 믿어줄 이가 몇이나 될까.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믿지 않는 소리였으니.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법이다. 나는 아직도 종종 나와 밤을 지새우지만, 그때와 같이 순수한 시선으로 별을 바라보는 것은 못했다. 저 별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지, 저 별은 누가 선호할지, 저 별은 교통이 얼마나 편리할지 등등을 나도 모르게 가늠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직업병이라면 서글플 따름이다. 그래도 나름 어릴 적의 꿈이라는데.
그렇게 하루를 세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게 문을 닫고 이치마츠에게 찾아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누웠다. 뭐하는 짓이냐며 드물게도 시끄럽게 굴던데, 그게 내 알 바는 아니지. 내 친절과 배려는 원래 고객을 위해서만 쓰이는 것이었다. 우주 한 구석에서 평화롭게 교사 일이나 하며 인생의 여유을 만끽하는 놈에게 베풀 친절은 없단 말이다. 이치마츠도 그걸 알았는지, 곧 입을 닫고 방을 내주었다. 처음 뻔뻔하게 굴었던 것과 달리, 막상 허락 비슷한 것을 받으니 갑자기 눈치가 보여서 얼굴의 철판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결국 그렇게 몇 주를 뒹굴었다. 내가 한참이나 그렇게 자리를 잡고있자 불안했는지, 문득 이치마츠가 물었다.
"..쵸로마츠, 혹시 계속 안 나가고 여기 있을 셈이야?"
"..그, 그.. 언젠가는 나가야겠지만 지금은 좀.."
"아, 아니, 혹시 계속 이렇게 있을 거라면, 차라리 잠깐 어디 놀러다녀오는 건 어떨까 해서.."
쫒아낼 속셈이 분명하지. 그렇지만 이대로 이 집에 머무르는 것도 미안해서, 모르는 척 받아쳤다. "어디로?" 기다렸단 듯 대답한다.
"아는 사람이 있거든. 여기저기 여행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인데, 같이 다니면 심심하진 않을 테니까.."
네가 나한테, 여행을?
뻔히 다 알면서 저런 걸 권유하지.
지가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와 똑 닮았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저래뵈어도 나름 배려심이 깊은 녀석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추천해주는 사람이라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치마츠가 찍어준 좌표로 가는 내내 내가 만날 사람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여자이려나? 아니, 이치마츠가 아는 사람이 여자일 리가 없지. 필시 남자일 것이다. '같이 다니면 심심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조금 특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각보다 재미없을지도 모르지. 그냥 언제나의 출장업무처럼, 별의 여기저기를 살피는 것이 전부일지도. 아니, 전부일 것이다. 기대는 적을수록 좋으니,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기묘하게도 되뇌일 때마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이치마츠가 알려준 곳으로 다가갈수록, 주변의 공기가 더워지고 있는 탓일지도 몰랐다. 조금 눈부신 것도 같은데, 혹시 항성 근처라던가.
이 근처라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창을 내렸다. 3cm 정도나 내려갔을까, 내린 창과 차의 창틀 사이로, 손가락 4개가 불쑥 들어왔다.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꾸우욱 눌러 창을 연다.
창 사이로 쏟아지는 더운 열과 빛, 별을 등지고 선 인영에 겨우 눈을 떴다. 그림자로 뒤덮힌 얼굴에서 두 눈만 반짝거렸다. 천진난만한 아이마냥, 다 자란 몸과 맞지 않는 모양새로, 세월을 모른단 듯.
"-오, 그 쪽이 쵸로마츠?"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밤들은 전부 별을 바라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만 보내도 내게 밤은 하루의 3분의 1보다 귀하게 느껴졌기에,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그렇기에 나는 별을 등지고도 반짝이는 그 두 눈을 보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내게 별을 눈에 담을 수 있다고 말해준 적은 없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고 흔히 들어왔다. 내가 누구보다도 별을 사랑했음에도 그와 같이 반짝일 수 없는 것은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불공평함을 보상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별을 담지 못하여 말라야했던 그 날들을 보상받을 권리가 내게 있지 않을까?
손을 가볍게 뻗어 멱살을 쥐고는, 당황한 듯 보이는 그 얼굴을 내 앞까지 끌어내렸다. 검은 눈 위에 박힌 별들을 하나하나 뜯어살피듯 바라보았다. 하늘이 흔들린다.
아, 억울하단 말로 대신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지 않을까. 그 눈은 그렇게도 예뻤다.
수 천의 달과 마주하고, 수 천의 별과 함께하고, 수 천의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도 반짝이는 눈맞춤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면, 믿어줄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